1)식물재료·토목재료·물 또는 조형물을 이용하여 쾌적한 생활공간을 조성하는 기술.
2) 이러한 기법에 의해 이루어진 4차원적인 공간을 경원(景園)이라고 한다.
정원(庭園)이라는 일본식 용어는 담으로 둘러싸인 주거의 뜰에 이루어진 조경공간을 일컫는 말로, 포괄적인 뜻을 지닌 ‘경원’의 한 부분이다.
한편, 자연 속에 꾸민 경원은 원림(苑林)이라고 부른다.
특정한 조경문화의 발생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소는 자연환경과 신앙 또는 종교, 민족성,
그리고 시대적인 사조라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조경문화가 처음으로 싹텄던 이집트는 강수량이 연간 50㎜에도 이르지 못하는 사막국가로서 식물이 자연스럽게 싹트고 자라기에는 힘이 들어 숲을 이룰 수 없었다.
그래서 이집트 사람들의 가장 큰 소망 가운데 하나는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쉬며 넘치는 맑은 물에 손과 발을 담가 보는 것이었다. 그러한 소망을 이루기 위하여 나일강가에 집터를 잡고,
뜰에 못을 파고 물고기를 길렀으며, 녹음수를 심어 그늘 아래에서 쉬었다.
조경식물은 될 수 있으면 보기에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먹을 수 있는 열매가 열리는 것을 골랐다. 역사적으로는 기원전 1500여 년의 일이다.
여름철에 비가 거의 내리지 않으며 대부분 사막으로 이루어진 이스라엘이나 아라비아지방도 풍성한 나무숲을 이룰 수 없으며 식량 생산이 어려워 살기에 적합하지 못한 곳이었다.
이러한 지방에서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나타난 종교가 기독교와 회교였으며,
이들 종교가 약속하고 있는 천국이 바로 나무숲이 우거지고 온갖 꽃이 만발하며 맑은
물이 흐르는 곳이다.
그 천국을 현실화한 것이 기독교의 수도원에 꾸며진 클로이스터(cloister)이며, 회교 사원에 꾸며진 파티오(patio)로 모두 물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기록에서 볼 때 백제의 조경문화는 4세기 말로 올라가지만 보다 구체적인 기록은
사비시대인 제30대 634년(무왕 35)에서 볼 수 있다.
즉, 무왕은 궁궐 남쪽에 네모난 ‘궁남지(宮南池)’라는 못을 파고 방장선산(方丈仙山)을 상징하는 섬을 만들었으며, 네 언덕에는 버드나무를 심었다.
바로 직선을 도입한, 신선사상을 배경으로 하는 조경양식이다.
부여에 있는 백제시대 정림사(定林寺)터에서도 직선적인 쌍지(雙池)가 발견되고 있다.
고구려는 427년(장수왕 15)부터 평양의 대성산성시대에 만든 듯한 진주지(眞珠池)라는 못이 평안남도 중화군에 있었는데, 한 변이 약 100m 되는 네모의 못 안에 네 개의 섬이 만들어져 있었다. 형태로 볼 때 부여에 있는 궁남지와 비슷하다. 이 진주지는 동명왕릉 서쪽 400m 되는 거리에 있는 것으로 보아 동명왕릉과 서로 관계가 있는 듯하다.
한편, 500년대에 축조한 것으로 보이는 안학궁(安鶴宮)의 남궁 서쪽에는 자연스러운 못과
축산으로 이루어진 경원이 만들어져 있다.
3개의 섬이 있고, 못의 윤곽선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아 신선사상을 배경으로 하며,
바닷가의 풍경을 본떠 만든 경원인 듯하다.
통일신라시대인 600년대에 만든 것으로 생각되는 경주의 임해전 월지원(月池苑)은 못의
윤곽선과 축산이 자연스러우며, 더구나 3개의 섬이 있다는 면에서 안학궁 남궁원(南宮苑)과는
형태적인 면에서 매우 유사하다.
이들 경원은 윤곽선을 처리하는 데 자연 곡선을 쓰고 있다는 점에서, 직선을 쓰고 있는 백제의 못이나 고구려의 진주지와는 특징을 달리하고 있다.
한편, 경주지방의 남산 기슭에는 800년대에 만든 포석정터가 있다. 이곳에는 술잔을 띄우며 시를 읊고 놀기 위한 곡수도랑[曲水渠]이 만들어져 있다.